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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지식 밥상

최인국 입북



류미영 북한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의 차남 인 최인국이 북한에 영주 거주할 목적으로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언론.이 보도했어요.






최덕신(1914∼1989) 전 천도교 교령 의 아들 최인국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올해 창립 160년을 맞아 남북교류 사업 추진에 강한 의욕 을 내비친 천도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였던 천도교 는 1980∼1990년대 핵심 지도자의 잇단 월북으로 교세가 크게 위축된 바 있.어요.



 


◆'포덕 160년' 남북교류 추진하던 천도교에 '불똥' 튀나



 7일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에 따르 면 이 매체는 최근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 에 영주하기 위하여 7월6일 평양에 도착하였다”고 보도하면서 류미영 전 위원장은 최덕신 전 천도 교 교령의 부인으로 1986년 남편과 함께 월북했고 2016년 11월 95세를 일기로 별세 했어요.


 


최씨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발표.한 도착 소감에서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북한)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 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어요.



 








천도교는 수운 최제우(1824~1864) 대신사 가 도를 깨달아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 사상을 주창한 1860년을 종교 창립일로 여기 고 있어요 천도교 교리에 따른 포덕(布德) 원년이 바로 1860년이고, 따라서 올해는 포덕 160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요.



 


천도교는 이를 기려 오는 10월3일 평양 단군릉 에서 남북 천도교인들이 개천절 행사를 공동으로 여는 등 다양한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 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 최씨도 앞서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 북한 천도교 측과 의견을 나눈 것으 로 알려져 있어요.





실제 천도교 이정희 교령은 2017년 12월 언 론 인터뷰에서 “천도교를 통해 남북이 화해와 통일의 활로를 찾았으면 좋겠다”며 “최덕신·류미.영 부부의 아들인 최인국씨가 이(문재인) 정부 최초로 방북 허가를 받아 북에 다녀온 것이 교류 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어요



 



◆1986년 최덕신, 1997년 오익제… 잇단 '월북' 악재 왜?


하지만 최씨의 느닷 없는 ‘무허가’ 방북과 북한 영주 선언이 천도교.의 이런 계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 되고 있어요



 


당장 정부는 이날 “최씨의 입북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공안당 국도 최씨에 대해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 을 두고 수사 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어요



 


천도교는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국을 대표 하는 종교였으나 광복과 분단을 계기로 교세가 위축하기 시작했다. 특히 교단 핵심 지도자 들이 잇따라 월북하는 길을 택하면서 천도교는 더욱 쇠락의 길을 걸.었어요



 


1986년 최씨의 선친인 최덕신 전 교령 부부가 월북했다. 육군 장성 출신으로 외무부 장관, 주독일 대사 등을 지낸 최 전 교령은 1967년부터 천도교 제7대 교령을 맡 아 오래 재직했어요. 그런데 1970년대 후반 교단 에서 각종 잡음이 불거지고 그로 인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 과도 사이가 나빠지자 교령을 그만뒀어요. 이후 부인 류미영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최 전 교령은 1986년 부부가 함께 북한으로 가서 나란히 고위직 을 지냈어요





종교계의 한 관계자는 “1945년 광복 때 북한 에만 교인이 200만명이었을 정도로 교세가 컸던 천도교의 쇠퇴는 ‘반공(反共)’을 중시 하던 1980∼1990년대 핵심 지도자들이 월북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어요.


북한 선전 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류미영 전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할 목적으로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최인국 월북 소식 을 전했어요




이 매체에 따르면 최인국 은 평양 국제 공항에 도착, 소감에서 "우리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고마운 조국에 따라 길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키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도리이기에, 늦었지만 공화국에 영주 할 결심 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어요


이날 '뉴스광장'은 "평양 국제공항에 최인국이 들어서자 북한 노동당 의 위성 정당인 천도교청우당 관계자들이 꽃다발은 건넸다"라고 전했 어요.


그러면서 "북한 매체가 최씨가 북한에 영구 거주하기 위해 전했다"라고 밝.혔어요





이후 "최인국이 부모님 의 유언 을 지키기 위해 늦게나마 결심을 내렸다"라면서 "최 씨의 아버지 최덕신은 외무장관을 지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과의 갈등으로 1976년 미국으로 떠난 뒤 십 년 뒤 월북해 자녀들과 헤어졌다"라고 덧붙 였어요.





그러면서 "최덕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최덕신 사망 이후 아내 류미영이 중앙위원장 자리 를 잇는 등 6.25 전쟁 이후 최고위급 월북자로 지냈다"라고 전하며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의 말을 빌려 북한이 최인국 에게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사망 이후 공석으로 남아있는 위원장 자리 를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렸다.



한편 정부는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어요


최인국은 "나는 70세를 넘었지만 내 인생은 이제 시작 이라는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부모의 간절한 뜻대로 경애 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를 받들고 조국 통일 위업 실현에 내 여생을 모두 바치고 싶다"고 말,했어요





한편, 최덕신-류미영 부부는 1976년 8월 미국으로 이민 을 갔지만 인종차별을 견디지 못 한 최덕신을 위해 1986년 부부가 월북 했어요.




최덕신 전 장관은 1989년 사망했으며, 류미영 은 북측에서 조선천도교 청우당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공동의장, 6.15공동 선언실천 남북공동위원회 북측위원회 명예공동위원장, 조선 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 단군민족통일협 의회회장, 조선종교인협회 부회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최고인 민회의 제13기 대의원 등을 역임했어요.




특히, 류미영은 2000년 8월 제1차 이산 가족 상봉시 이산가족 상봉단 북측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하여 아들과 상봉한 바 있 어요.


7일 북한 매체의 보도로 알려진 최인국(73)씨의 갑작스러운 월북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가 월북 배경으로 ‘부모의 유언’을 언급한 점 으로 미뤄 가족사가 크게 작용 했을 가능성이 제기됬어요


최씨는 천도교 관련 단체인 동학민족 통일회(동민회)에서 대외협력국장, 공동 의장 등을 역임했어요. 그에 앞서 1986년 월북한 아버지 최덕신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외무부 장관(1961∼63년)까지 지냈다. 그는 1967년부터 제7대 천도교 교령 을 맡,기도 했어요. 교령은 천도교의 최고지도자에 해당해요




최 전 장관은 서독 대사 를 지낼 당시인 1967년 발생한 동백림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과 불편해졌다. 이런 이유 등으로 최 전, 장관 부부 는 1976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그는 1986년 아내 류미영씨와 북한으로 갔다. 최 전 장관 부부의 월북 으로 최씨를 비롯한 자녀들과는 남한과 북한, 해외 등으로 뿔뿔 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됐다. 최씨를 비롯한 자녀들은 부모의 월북 이후 어려움을 겪었다. 최씨의 형은 최근까지 독일에서 살다 3년 전 사,망 한 것으로 알려졌고, 세 명의 딸은 해외에 거주 중 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 전 장관은 북한 에서는 천도교청우당의 중앙위원장을 맡아 활동했어요. 그가 북한에서도 고위직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최씨 의 조부 최동오의 배경이 크게 작용 했어요. 최동오는 임시정부 법무부장과 임시의정원 법사위원장 을 지낸 독립운동가에요 중국 지린성 소재 화성의숙 교장을 지낸 최동오는 김일성 북한 주석 을 가르친 인연이 있다. 그는 조국 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 하다가 입북 3년 만에 사망했어요





이후 아내 류씨는 노동당 서열 22위의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이어받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대의원 등을 지냈다. 류씨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 위원 겸 참모총장을 지낸 유동열 선생의 수양 외동딸로 2016년 11월23일 당시 95세 로 북한에서 사망했다. 이때 한국에 거주하던 아들 최씨는 방북 승인을 얻어 북한을 찾았어요.







최씨 가족은 북한 고위 직이라는 특수한 신분 덕분에 연락을 이어갔어요. 어머니 류씨는 2000년 8월 제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당시 북측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이때 당시 남한에 살던 아들 최씨와 상봉했다. 통일부 에 따르면 최씨는 2001년 이후 가족상봉이나 성묘 등을 목적으로 12차례 공식 방북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 어머니 류씨가 위독,해지자 남북관계 위기 속에서도 아들 최씨의 방북은 허가됐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류씨 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신청한 방북 허가는 정부의 첫 개인 자격 방북 으로 허가됐어요.





최씨는 이전에도 방북 할 때면 호텔에 머무르지 않고 어머니의 자택에 머물렀을 만큼 부모에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최씨는 서울에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가 모두 사망한 상황에서 단행된 최씨의 월북에는 의문점이 여전히 남는다. 최소한 북한 당국과 사전 조율을 거쳐야 고려항공에 탑승해 평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추정 에서다. ‘기획 월북’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배경 이다. 최씨가 모친이 사망으로 내려 놓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자리를 북한 당국으로부터 제,안받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는 내놓고 있어요.


최 씨는 부모님의 유언을 지키는 길이기에 늦게 나마 결심을 내렸다고 말했어요. 그는 평양 국제비행장에서 “우리 가문이 대대로 안겨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부모님 의 유언 을 지켜드리는 길이다.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 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여생을 깡그리 바치려 한다”고 밝혔 어요





최씨 아버지 최덕신은 6·25전쟁, 이후 월북한 최고 위급 인사로 ‘남한판 황장엽’으로 통한다. 외무장관까지 지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갈등 으로 1976년 아내와 미국으로 갔다 10년 뒤 월북하며 자녀들과 헤어진 것으로 알려 졌어요.





최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부장(장관),과 임시의정원 법사위원장을 지낸 최동오 의 아들이어요. 최덕신 의 아버지이자 최씨의 할아버지인 최동오는 만주 독립 운동 시절 김일성 주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어요


최인국 월북은 예전 2016년 11 월에 어머니가 사,망 했을 때와 2017 년과 2018 년의 1 · 2주기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한번 이루 어졌으나 이번 방북은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최인국 방북 을 승인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 씨가 실제로 북한에 갔는지 사정에 대한 경위 를 파악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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